존 스컬리 인터뷰 (스티브 잡스에 대하여) *****

 

김영권 (홈페이지)
2011-01-03 14:12:37  |  조회 :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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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 of Mac

John Sculley On Steve Jobs, The Full Interview Transcript

By Leander Kahney (2:59 am, Oct. 14, 2010)

UPDATE: Here’s an audio version of the entire interview made by reader Rick Mansfield using OS X’s text-to-speech system. It’s a bit robotic (Rick used the “Alex” voice, which he says is “more than tolerable to listen to”) but you might enjoy it while commuting or at the gym. The audio is 52 minutes long and it’s a 45MB download. It’s in .m4a format, which will play on any iPod/iPhone, etc. Download it here (Option-Click the link; or right-click and choose “Save Linked File…”).
Q: "스티브 잡스의 방법론"을 말씀하시는데요. 그 방법론은 무엇입니까?
Sculley
: 큰 틀부터 말씀드려 보죠. 25년도 더 전에 잡스를 처음 만났을 때, 잡스는 제가 방법론이라 부르는 원칙을 그 때에도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훌륭한 제품을 어떻게 만드느냐이죠.
당시의 스티브는 아름다운 제품을 언제나 좋아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하드웨어를요. 제 집 문이 당시 특별한 경첩과 열쇠를 달고 있었는데, 잡스가 그걸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었습니다. 스티브와 저를 연결시켜준 것도 컴퓨팅이 아니라 산업 디자인이었어요.
당시 컴퓨터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컴퓨터 업계 사람들도 전혀 몰랐습니다. 개인 컴퓨터 혁명이 시작할 때였지만, 우리 모두 아름다운 디자인에 대한 신념만은 같았어요. 특히 스티브는 사용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곳부터 디자인을 시작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용자가 무엇을 어떻게 사용할까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았어요. 그런데 당시 제품 마케팅에 있던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당시 마케팅 쪽 사람들은 소비자 테스팅을 주로 했었어요. "무엇을 원하십니까?"하고 묻는 것이죠. 스티브는 그런 걸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제가 어찌 감히 사람들한테 그래픽-기반 컴퓨터가 어떻게 되리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픽 기반 컴퓨터가 뭐가 뭔지도 모를 시절인데요." 가령 누군가에게 계산기를 보여주면서 컴퓨터의 방향이 이렇다 하고 말할 수는 없죠. 너무나 간격이 크니까요.
스티브는 항상 사용자의 관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즉, 사용자의 인상에 따라 산업 디자인은 엄청나게 중요하지요. 그래서 그가 저를 고용했어요. 그는 컴퓨터도 결국 소비자용 제품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그 때가 1980년대 초반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엉뚱한 생각이었어요. 개인용 컴퓨터는 대형 컴퓨터의 소형 버전일 뿐이라 여기던 때였으니까요. IBM의 관점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할 수 있는 대단히 간단한 게임들이 있었기 때문에, 게임머신에 가까우리라 생각하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티브는 정말 완전히 다른 개념을 갖고 있었어요. 그는 컴퓨터가 세상을 바꿀 것이며, 그의 어법으로 바꾸자면 "마음의 자전가"가 될 것이었습니다. 개개인이 이전까지 꿈도 못 꾸던 것들을 할 수 있으니, 단순히 게임 머신은 아니지요. 대형 컴퓨터가 소형화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잡스의 비전은 거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단계의 정확한 디테일까지 신봉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모든 것을 신경쓰는 완벽주의자였습니다.
애플 II 당시로 돌아가 보죠. 스티브는 컴퓨터를 플라스틱 케이스에 집어 넣은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그 케이스를 ABS 플라스틱이라 불렀고, 키보드도 컴퓨터에 집어 넣었었어요. 오늘날 생각해보면 꽤 간단해 보이지만 당시로 돌아가보면, 1977년 애플 II를 처음 만들어냈을 때부터 스티브의 방법론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매킨토시로, 넥스트 컴퓨터로도 나타났죠. 미래의 맥, 그러니까 아이맥과 아이포드, 아이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티브의 방법론이 다른 이들의 방법론과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냐? 제일 중요한 결정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입니다. 그는 미니멀리스트이거든요.

한 번은 스티브의 집에 갔었어요. 가구가 거의 없더라구요. 다만 그가 대단히 존경스러워하는 아인슈타인 사진이 하나 걸려 있었고, 티파니 램프와 의자, 그리고 침대가 하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주변에 뭔가 많은 것을 두려하지 않았고 자신의 선택을 극도로 까다롭게 했습니다. 애플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잡스는 사용자 경험을 시작하였으며, 산업디자인을 다른 사람들이 기술제품에서 생각하는 산업디자인처럼 놓아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석과 비교할만 하죠… 아름답고 잘 다듬어져 있으며 기능성이 좋은 황동으로 된 경첩을 사례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스티브가 손을 대면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되었어요.
매킨토시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 때 아직 개발중이었던 매킨토시는 빵 반죽하는 도마 위에 컴퍼넌트들을 늘여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뭔가 의미가 없죠. 그러나 스티브는 절대적으로 최고의, 제일 똑똑하다고 느끼는 인물들을 데려다 놓았어요. 그의 카리스마는 정말 강력했고,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사람들이 그와 같이 일하고 싶어했습니다. 제품이 존재하기도 전에 비전을 믿게끔 만들었죠. 제가 맥 팀에 가 봤을 때 보니까, 아직은 팀원이 적었지만 곧 100명이 되었습니다. 평균 나이는 22살이었습니다.
이 팀원들은 상용 제품을 한 번도 만들어본 바가 없었지만 스티브와 스티브의 비전을 믿었어요. 게다가 스티브는 여러 가지 수준의 작업을 동시에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작업한 것 중에 큰 개념으로서 "세상을 바꿔라(change the world)"가 있었고,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실제로 제품을 만들기,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시스템을 디자인하기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애플리케이션과 연결되는 주변기기 작업 디자인도 해야 했죠.
모든 경우 그는 언제나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왔고, 개인적으로 자기 팀에 데려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시킨 적이 없었죠.
그런데 스티브는 커다란 조직을 존경하지 않았어요. 그는 그런 조직이 관료적이며 비효율적이라 여겼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을 "얼간이들(bozos)"이라 불렀습니다. 존경하지 않는 조직원들에 대한 그의 통칭이었죠.
맥 팀은 하나의 팀이면서 결국 100명 수준까지 확대되었어요. 왜 100명이냐면, 스티브가 100명 이상은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00명이 찼을 때 누군가를 데려오려면 누군가가 나가야 했어요. 스티브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100명 이상의 이름을 내가 기억할 수 없고,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그래서 100명이 넘으면, 내가 내 방식대로 통솔할 수 없는 구조의 조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내 방식은 내가 모든 것에 손대는 것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애플에서 잡스를 보았을 때 그런 것이 바로 잡스가 자기 비전을 실현시키는 방식이었어요.
Q: 애플이 커졌을 때 그러면 어떻게 했죠? 가령 현재의 애플은 수 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데요.
Sculley
: 스티브라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조직은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맥 팀은 아니다. 제품 개발부로서 매킨토시 팀이 만들어졌다." 애플에는 중앙화된 영업조직이 있었고, 조직관리와 법률관계를 다루는 사무실도 있었습니다. 제품을 만들면 그것을 실제로 제조하는 부서도 있었죠. 하이테크 제품에서는 다 그렇습니다. 만드는데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운영체제 만드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운영체제에 수 백, 수 천 명이 달라붙지 않을까 생각들 하시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소규모의 팀일 뿐입니다. 예술가의 작업실을 생각해 보세요. 애플이라는 작업실에서 스티브가 마스터이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는 불가 통보였죠.
자정이나 1시까지 일할 때가 많았어요. 엔지니어들이 보통 점심 때에나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엔지니어가 최신 소프트웨어 코드를 하나 작성해서 스티브에게 가져다 주면 스티브는 그 코드를 보고 다시 돌려줍니다. "충분하지 않다"면서 말이죠. 스티브는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계속 높이라고 다그칩니다. 그러다보면, 자기들이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도 해내게 되죠. 스티브가 계속 카리스마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정말 뭔가 위대한 걸 만들고 있다는 인식을 계속 심어준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작업물에 대해서는 가차 없어요. 이 경우, 매킨토시에 들어갈만큼 위대한 수준이 아니라면 통과를 못하죠.
Q: 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나요? 변덕이 아니라 잘 생각해서 하는 건가요?
Sculley
: 아뇨. 스티브는 정말 규칙적입니다. 그는 언제나 사무실에 칠판을 하나 갖다 놓았어요. 그가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한 그리기 능력은 없었지만 취향만은 정말 거대했습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주된 차이점이 하나 있어요. (빌도 물론 뛰어납니다.) 빌은 훌륭한 취향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는 언제나 시장 지배에만 관심을 가졌어요.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내는 인물이었습니다. 스티브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겠죠. 완벽주의자이니까요. 스티브라면 차라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예사롭지 않은 기회를 가질 겁니다. 단 항상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봐야 하죠. 그래서 여러 CEO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해 볼 때면, CEO는 훌륭한 리더이자 예술가, 협상가, 동기 부여를 해 주는 인물이어야 하잖나 싶은데 말이죠. 스티브의 경우는 위대한 디자이너입니다. 애플의 모든 것은 디자인의 렌즈를 통해서 이해해야 최고일 겁니다.
시스템 디자인, 산업 디자인이나 사용자 경험의 룩앤필을 디자인할 때 말입니다. 심지어 보드를 어떻게 눞이느냐도 거기에 속합니다. 스티브가 볼 때 보드도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매킨토시를 소비자가 뜯어서 볼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사람들이 안쪽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었죠.
그의 완벽주의에서 모든 것의 디자인은 아름다워야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않더라도 말이죠.
그가 매킨토시 공장을 처음 세울 때부터 모든 시스템이 다 그런 식이었습니다. 매킨토시 공장은 최초의 자동화 공장이 될 예정이었지만, 자동화 과정은 마지막 공정과 테스트 공장 뿐이었습니다. 들어서 패키지로 싸는 로봇 공장이었죠. 25년 전은 오늘날같지 않았습니다만, General Motors의 CEO, 로스 페로(Ross Perot)가 매킨토시 공장을 보러 왔을 때가 기억 납니다. 공장때문에 온 방문이었어요. 보여준 것이 자동화된 공장들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웠죠. 공장 디자인으로서 말이죠. 제품만큼 많은 사람들을 요구하는 공장의 시대가 끝난 것이었습니다.
지금 스티브가 만들어내고 있는 제품들을 볼까요? 오늘날의 기술은 훨씬 다재다능합니다. 소형화와 상용화도 시킬 수 있고, 저렴해졌어요. 그리고 애플은 더 이상 제조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애플에 있을 때 애플보고 "수직통합된 광고 대행사"라 불렀었는데요.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죠.
그런데 현재는 사실 모두가 다 "수직통합된 광고대행사"입니다. HP나 애플, 모두가 그렇죠. 대부분의 회사들이 제조는 아웃소싱을 하거든요.

Q: 나이키가 좀 비슷하지 않을까요?
Sculley
: 그럴 겁니다. 나이키가 좀 가깝죠. 사실이라 생각해요. 당시 일본 가전제품 기업들을 보시죠. 그 때 그들은 모두 아날로그 기업들이었습니다.
스티브가 존경한 기업이 소니였어요. 스티브가 실제로 아름다운 제품이라 존경했던 고급 표준을 갖고 있던 사람이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였습니다. 모리타가 스티브와 저에게 최초의 소니 워크맨을 줬던 때가 기억납니다. 우리 둘 다 그런 제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죠. 그런 제품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25년 전 얘기입니다. 그 때 스티브는 워크맨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어요. 모리타에게서 받은 워크맨을 분해해가지고, 어떻게 맞추어지고 마감이 되었는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기 위해 모든 부품을 모조리 다 살펴보더군요.
소니 공장도 좋아했습니다. 우리는 거기도 방문을 했어요. 여러 다른 색깔의 유니폼을 입은 다양한 색깔의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기능에 따라 빨간색, 녹색, 청색 등으로 나뉜 것이죠. 주의깊게 짠 구성이었습니다. 스티브도 크게 감명받았어요.
맥 공장이 바로 그랬습니다. 색깔별 유니폼은 없었지만 우리가 봤던 소니 공장만큼 하나 하나 다 우아했어요. 당시 스티브는 늘상 소니를 빗대었습니다. 그는 정말 소니가 되고 싶어 했어요.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었습니다. 소니였어요.
그런데 당시로서는 소니처럼 디지탈 제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아날로그였고, 일본 기업들도 아날로그였어요. 미시건 대학에서 나온 Prahalad의 책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주: 스컬리는 C.K. Prahalad의 "Competing for the Future"를 언급하고 있다. (1994))
일본은 언제나 부품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시작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승자가 되죠. 센서는 누구, 메모리는 누구, 하드 드라이브는 누구, 이런 식입니다. 일본 기업들은 일단 부품으로 시장력을 키운 다음, 최종 제품으로 나아갑니다.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아날로그 전자제품이라면 좋은 전략이지요. 핵심 부품 비용을 통제해야 우위에 설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디지탈 전자제품의 가치 체인망으로 보면 아니에요. 작동하지 않습니다. 부품부터 시작하면 안 되죠. 사용자 경험도 아닙니다.
그러니 지난 15년간 디지탈 소비자 가전제품 산업이 나타나는 동안 소니의 문제가 거대해진 겁니다. 소니는 완전히 분화되어 있는 조직이에요. 소프트웨어 직원들이 하드웨어 직원들과 대화하질 않습니다. 부품 직원들과 디자인쪽 직원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조직별로 논쟁을 벌이고, 거대하면서 관료적입니다.
소니도 아이포드같은 제품을 만들어야 했지만 결국 애플이 해냈습니다. 아이포드는 스티브 방법론의 완벽한 사례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인 시스템을 보고 사용자 입장에서 시작한다는 그 방법론의 사례입니다.
스티브는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의 시스템이었어요.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위대한 시스템 사상가가 잡스이죠. 다른 기업에서는 볼 수 없으실 겁니다. 다른 기업들이라면 자기 것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 아웃소싱해버리니까요.
아이포드를 한 번 보시죠. 공급망은 모두 중국의 아이포드 도시로 넘깁니다. 제품 자체로도 세려된 디자인이지요. 공급망으로 볼 때 그런 완벽주의의 표준형은 도전 과제가 될만합니다. 사용자 디자인 면으로 봐도 그렇지만요. 사물의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것이죠.
Q: 전체적으로 접근한다는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을까요? 이를테면 모든 것, 전체적인 시스템을 말이지요.
Sculley
: 스티브는 시스템을 사람들에게 개방할 경우 변화는 거의 없어지고, 변화가 생기더라도 그 변화는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스티브는 그런 걸 바라지 않죠.
Q: 하지만 이러한 통제는 제품의 모든 면, 그러니까 박스를 열 때조차도 해당되는데요. 박스를 여는 느낌도 스티브 잡스 디자인이잖습니까?
Sculley
: 오리지날 매킨토시에는 운영체제랄 것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그 때에도 운영체제를 어째서 라이센싱하지 않냐고 물었었습니다. 답변은 간단해요. 운영체제가 없으니까요. 매킨토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엄청나게 결합시킨 하나의 시스템이었습니다. 그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오늘날의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비해 너무 약했어요. 화면상에 그래픽을 나타내려면, 프로세서의 모든 파워를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칩을 기판에 붙여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야 다른 기능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 다음에는 "ROM 호출(calls to ROM)"이라는 것을 해 놓아야 했습니다. ROM 호출은 400개가 있었어요. 실시간으로 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ROM에 올려 놓아야 할 하위루틴이었죠. 이 모든 것을 깔끔하게, 같이 해야 했습니다. 매킨토시의 첫 프로세서 속도가 3 MIPS(Million Instructions Per Second)가 못 되었어요.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3 MIPS짜리 머신이 전혀 생각 안 나는데요. 디지탈 시계만 하더라도 최초의 매킨토시보다 2~300배는 더 강력할 겁니다.(주: 참고로 현재 나오는 제일 저렴한 아이맥은 인텔 Core i3 칩을 장착하고 있는데, 이 칩은 40,000 MIPS가 넘는다!)
그렇게 약한 것 가지고 그 시절에 이룬 것을 보면 정말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1980년대에 우리가 첫 매킨토시로 이룬 것 이상을 하기란 말 그대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1990년대에는 무어의 법칙과 다른 기술의 통일 덕택에 소비자용 제품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나타나기 시작했죠. 하지만 여전히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소비자용 제품으로서 부품 가격과 범용화, 소형화가 적절하게 이뤄진 때는 21세기가 되고 나서죠. 그 이후에서야 갑자기 디지탈 전자제품이라 부를 수 있는 제품들이 나타났습니다. 스티브의 디자인 방법론은 25년 전에도 너무나 맞아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디자인 방법론, 그러니까 그의 첫 번째 원칙인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을 보고, 절대 타협하지 말 것이며, 다른 제품이 아니라 당신 자신과 비교하라이죠. 당신 자신과 그 부문에서 제일 좋은 보석을 비교하라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라이기도 하죠. 모두들 싸구려 제품만 갖고 만들던 때였어요. 최대한 싸게, 그러면서 강력하게 만드는 시대였죠. MP3 플레이어처럼 말이죠. 아이포드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MP3 플레이어 종류가 천 가지는 넘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거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전체 시스템을 통제해야 한다입니다. 그의 원칙이죠. 그걸 토대로 모든 결정을 내립니다. 박스까지요.

Steve Jobs circa 1984. Illustration by Matthew Phelan


Q: 하지만 그 동기는 사용자 경험 아니겠습니까?
Sculley
: 당연하죠. 데스크톱 출판이건 아이튠스이건 사용자 경험은 시스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걸쳐 있어야 합니다. 모두 다 일부일 뿐입니다. 또한 제조, 공급, 마케팅, 소매점이기도 합니다. 절 데려온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저의 다지인 경력과 마케터 경력때문이었습니다. 제품 경험 마케팅의 경력이 있었죠. 컴퓨터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것도 몰랐어요.
Q: 그 부분이 특별히 좋은데요. 스컬리 씨 책을 보면 무엇보다 애플을 "제품 마케팅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Sculley
: 맞습니다. 스티브와 저는 제가 애플에 들어오기 전에 서로를 알기 위해 수 개월을 같이 보냈습니다. 스티브는 자기가 스스로 고른 것 외에는 마케팅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스티브다운 방식이긴 하죠. 그는 마케팅이 뭔가 중요해지리라고 보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빨아들이려 했습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이 하나 있어요. 스티브에게 펩시와 코크 간 차이점이 별로 없지만, 우리가 아홉 배 더 많이 팔았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펩시는 거대하며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면 사람들이 펩시를 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죠. 펩시를 넥타이처럼 취급하자고 결정내렸습니다. 그 시절 무슨 넥타이를 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했거든요. 넥타이는 곧 "나를 이렇게 봐 줘"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펩시를 멋진 넥타이로 만들어야 했어요. 한 손에 펩시가 있으면, "날 이렇게 봐 줬으면 좋겠어"가 되니까요.
연구를 좀 했더니 집에서 친구들에게 소프트 드링크류를 권할 때 내장고에 코크가 있으면 부엌으로 가서 코크를 꺼낸 다음, 유리컵과 같이 갖고 나와서 탁자에 놓고 손님들에게 따라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펩시라면 다르죠. 부엌에 가서 펩시를 꺼낸 다음, 부엌에서 유리컵에 따릅니다. 그리고 컵만 가지고 나오죠. 펩시가 나오는지 알게 하는 재미를 느껴보라 이겁니다. 코크가 더 인식이 좋아서 코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더 좋은 넥타이라는 말이죠. 스티브가 그걸 마음에 들어 했어요.
관념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 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 어떻게 현실을 만들어 가야하는지에 대해 굉장히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펩시 세대를 갖고 논했죠.
60년대 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의 수업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어요. 구매력 있는 중산층의 출현이야말로 마케터들에게 제일 중요한 사실이라고 말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르죠. 이들이 이제 60대가 되어 갑니다. 이들은 가처분 소득이 있는 첫 번째 세대였습니다. 필수품만이 아니고, 사고싶은 물건을 나가서 사기 시작한 세대였죠.
펩시 세대를 만들어냈을 때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펩시 마시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초점을 맞추는 것이죠. 펩시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코크는 언제나 코크 그 자체에 치중했어요. 우리는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에 집중했습니다. 자전가나 수상스키, 연날리기, 행글라이더를 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었어요. 마지막에는 그 보상으로 언제나 펩시가 등장하지요. 컬러 텔레비전이 나타나자 보여준 광고였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을 한 곳이 우리가 처음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최초이자 제일 오랫동안 돌린 라이프스타일 광고 캠페인이 펩시였습니다.
컬러 텔레비전이 나타나고 19인치와 같은 대형 텔레비전이 등장하기 시작하자 한 광고가 그거였습니다. 텔레비전 광고를 만드는 이들에게 가지 않았어요. 흑백 텔레비전 시절대로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헐리우드로 가서 최고의 영화 감독들과 함께 펩시의 60초 짜리 영화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영화죠. 1등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1등이 될 수 없죠. 그래서 펩시가 1등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자가 주된 주제였습니다. 1등처럼 나타나야 합니다.
스티브가 이런 아이디어를 좋아했어요. 우리가 하던 많은 일과 우리의 마케팅이 맥을 시장으로 끌어오는 것으로 집중되었습니다. 제품이 뭘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원한다는 기대인식을 고도로 높게 심어주어야 했어요. 맥은 처음 나왔을 때 그다지 대단한 기능을 갖지 않았습니다. 쓰인 기술 거의 전부가 다 사용자 경험이었죠. 사실 장난감이라는 반응을 얻기도 했어요. 아무 것도 못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결국 맥은 기술적으로 더 강력해지면서 다재다능해졌습니다.

Q: 물론 애플은 라이프스타일의 광고로 지금도 유명합니다. 실제로 부러워할만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죠. 애플 제품과 함께 말이죠. 쿨한 젊은이들은 아이포드를 갖고 지낸다든지…
Sculley
: 라이프스타일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스티브는, 뭔가를 보고 이해한 다음, 그것을 자신의 디자인 방법론의 맥락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알고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스티브의 뛰어난 장점입니다. 모든 것이 디자인이지요.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친구가 같은 날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두 회사를 모두 방문해야 했던 적이 있었어요. 작년 일입니다. 꽤 최근이죠. 그는 일단 애플에 갔습니다. 회의를 하기 위해 방 안으로 가자마자 디자이너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더랍니다. 애플 내에서 디자이너들이 제일 존경받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잠시 잡담을 멈추더라고 하더군요. 스티브와 직접 대면하는 사람들이 디자이너들이라는 점을 모두들 알고 있어요. 디자이너들이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곳은 애플이 유일합니다.
그 날 오후,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로 갔습니다. 회의를 하러 들어가니까 모두가 말을 하기는 하는데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더랍니다. 모두 기술 관계자들 뿐이었고, 디자인이 어때야 하는지, 자기 아이디어를 추가시키려 노력하고 있더라는데요. 이건 재앙으로 가는 지름길이지요.
마이크로소프트도 세계 제일의 인재들을 고용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으리만치 도전적인 과제를 통과한 사람들만 채용을 하지요. 그런데 얼마나 뛰어난지가 문제는 아닙니다. 애플에서는 조직 최상부에서 디자인을 다뤄요. 그것도 스티브 개인이 직접 이끕니다. 그런데 다른 기업들은 그렇지 않죠. 관료주의 밑바닥 어디엔가 묻혀져 있어요… 관료주의적인 회사라면 결재를 안 내릴 간부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대로 통과시키지를 않죠. 그래서 결국은 제품이 타협의 산물화 되는 것입니다. 스티브의 철학으로 되돌아가 보죠. 제일 중요한 결정은 무엇을 하지 말지이지, 무엇을 결정할지가 아닙니다. 사고방식도 미니멀리즘인 셈이죠.
초창기 시절의 스티브의 제1원칙은 안 바뀌었어요. 오히려 더 잘 가꿔놓았습니다.
예를 또 하나 알려드리지요. 훌륭한 예입니다. 소매점을 어떻게 했는지이니까요.
스티브는 세계 최고의 소매점 전문가를 하나 이사회의실로 데려왔습니다. 소매사업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였죠. (애플스토어 발족 이전,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해 잡스에게 조언을 한 사람, Gap의 미키 드렉슬러(Mickey Drexler)이다.) 소매점에 배웠을 뿐이 아닙니다. 저조차도 애플스토어보다 더 좋은 소매점을 가본 적이 없어요. 애플스토어는 전세계 소매점 중에서 면적당 수입이 제일 높을 뿐 아니라 사용자 경험도 제일 좋을 겁니다.
애플스토어는 통합적이에요. 소니 센터로 가 보세요.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 한 군데 있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노키아 스토어도 가 보세요. 뉴욕 57번가에 있습니다. 역시 아무도 없어요.
애플 스토어를 보면, 스토어가 있고 쳐다 볼 제품이 있습니다. 손대고 느낄 수 있죠. 애플스토어로 걸어들어가서 놀라운 경험을 안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곁에서 쇼핑하고 있죠.
다시 말씀드리건데 넥타이와 같은 겁니다. 애플스토어의 메시지가 이거에요. "나를 이렇게 봐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여기 있어요. 지니어스 바에 있어요. 제품을 써 봐요. 나를 봐요. 매장 내 다른 사람들과 같아요."
사용자 경험은 제품 사용만이 아니에요.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한 것부터 디자인까지 모두를 포괄하죠. 스티브는 자신의 취향과 완성도에 있어서 전설적입니다. 각도와 라인, 흠이 놓여있는 것을 보십시오. 이 사소한 디테일이야말로 디자이너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스티브는 아무도 문제라 생각지 않는 부분을 봅니다. 그리고서는 퇴짜를 내리지요. 워낙에 그가 제시하는 표준이 드높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애플이라면 어떻게 할까? 애플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뛰어난 제품을 만들어낼까?"
말씀드린 것 한 가지가 기억나네요. 스티브는 제게 이렇게 묻곤 했었어요. "펩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훌륭한 광고를 만들었나요?" 광고 대행사를 잘 선택해서인지를 물었어요. 무엇보다도 훌륭한 제품이 나와야 하고, 그 다음에 과감한 광고를 펼칠 기회로서 제품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훌륭한 광고는 훌륭한 클라이언트에서 나오게 되어 있죠. 최고의 광고업체들도 최고의 클라이언트와 같이 일하고 싶어 합니다. 훌륭한 작업에 대해 감사해할줄 모른다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 하지 않는 경우, 혹은 광고에 대해 전혀 감흥이 없는 클라이언트는 광고업계에서도 사절입니다.
그런데 대기업들 대다수는 그것을 하위 조직에 일임해버려요. CEO 또한 최종판으로 광고가 나왔을 때 빼고는 광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펩시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애플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스티브 잡스도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는 언제나 광고와 디자인, 모든 것에 일일이 관여했으니까요.
Q: 좋아요. 리 클로(Lee Clow, TBWA Chiat/Day의 사장)가 매주마다 잡스와 만나러 비행기까지 탄다고 들었습니다.
Sculley
: 애플이 디자인을 이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무엇이 애플을 다르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매점도 보고, 소매점의 계단도 봐야 해요. 특별하게 따로 만들어야 하는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스티브라면 응당 그렇게 할만한 계단이지요. 주변 사람들이면 스티브가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CEO와는 전혀 다르게 표준을 정하거든요.
그는 미니멀리스트이고 끊임 없이 제일 단순한 수준으로 줄입니다.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라 단순화에요. 스티브는 시스템 디자이너이고,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킵니다.
별 신경을 안 쓴다면 그저 단순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그런 실수를 하는지 놀라울 정도에요. 마이크로소프트 Zune을 보시죠. 마이크로소프트가 Zune을 발표할 때 CES에 갔었는데, 정말 말그대로 지루했습니다. 보러 가지도 않더군요… Zune은 바로 죽어버렸어요. 수퍼마켓에 유통기한 지난 채소를 갖다 높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도 가까이 가려하지를 않았으니까요.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 대단히 똑똑합니다. 하지만 철학이 완전히 달라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세 번째쯤 시도해야 괜찮은 물건이 나온다는 전설같은 얘기가 있는데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일단 시장에 내놓고 나중에 고치자이니까요. 스티브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스티브는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내놓지 않아요.

Q: 광고에 대해 말해 보죠. 광고는 애플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책에서도 ‘전략적인 광고’에 대해 말씀하셨더군요. 전략으로서의 광고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Sculley
: 실리콘밸리에 왔을 때 그곳은 광고가 전혀 없었습니다… 광고에 정말로 관심을 기울였던 유일한 기업이 애플이었다. HP는 그 시절 전혀 광고를 하지 않았죠. 대규모 브랜드 광고를 한 곳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애플에 고용된 이유 중 하나가 대규모 브랜드 광고를 도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애플 로고가 당시 여러가지 색깔이었죠. 애플 II가 최초의 컬러 컴퓨터였으니까요. 아무도 컬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고에다가 색상별로 칠해 놓은 겁니다. 잡지나 패키지에 로고를 인쇄할 때는 4가지 색상으로 했어야 했는데 스티브는 6가지를 고집했어요. 그래서 애플 로고를 인쇄할 때는 언제나 여섯 가지 색상으로 인쇄했습니다. 그러면 비용이 30~40% 더 올라가지만 스티브가 원한 것이 그거였어요. 우리가 늘상 하던 일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초창기 시절부터 완벽주의자였습니다.
Q: 그것때문에 사람들 피곤하게 하지 않나요. 당신도 좀 그랬습니까?
Sculley
: 언제나 옳다면야 좀 피곤해도 괜찮죠. 하이테크에서 알게된 점이 하나 있어요. 성공과 실패 사이에는 매우 얇은 막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하이테크 산업은 리스크가 끊임 없어요. 더군다나 항상 최전선에 있는 애플에 있다면 더 그럴 겁니다.
즉, 성공 쪽이건 실패 쪽이건 결국 50%라는 이야기입니다… 스티브도 잘못한 적이 여러 번 있지요. 매킨토시에 하드드라이브를 넣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에 누가 물었었는데, 스티브는 디스크를 던졌어요. "우리가 필요할 건 그것이 전부요."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한편 스티브는 애플톡(AppleTalk)과 애플링크(AppleLink) 개발팀을 이끌고 있었어요. 애플톡은 매킨토시를 레이저프린터와 연결시켜주는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데스크톱 출판을 이끌어낸 기술이죠.
애플톡은 당시 홀륭한 기술이었습니다. 매킨토시만큼 뛰어났어요. 애플톡 또한 미니멀리즘적인 접근의 사례입니다. 아무도 풀어야 할 문제라 생각도 안하던 시절에 문제를 해결한 겁니다. 말하자면, 15~20년 후에나 나타날 문제점을 80년대에 고치려 애쓰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기술이 충분히 강력해져서 대중시장용으로 나올 수 있으려면 10년은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러 경우에 있어서 스티브는 시대를 앞섰지요.
돌이켜보면 저를 CEO로 임명한 것도 큰 실수였어요. 스티브가 CEO를 되고 싶어했기때문에 저는 첫 번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후보 1순위였죠. 하지만 이사진에서 당시 25~26세인 스티브를 CEO로 맞이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CEO 후보들을 모두 소진해버린 것이지요… 애플 주주였던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가 결국 다른 업계를 찾아보자고 말했어요. 일류 헤드헌터를 고용해서 하이테크가 아닌 분을 모시자였습니다. 그래서 애플이 절 찾았어요.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스티브와 제가 파트너로 일하자는 아이디어였죠. 기술 쪽은 스티브가 맡고 마케팅은 제가 맡는 식이었습니다.
저를 CEO로 임명한 것이 실수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스티브는 언제나 CEO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진에서 이렇게 말했다면 더 솔직했겠죠. "스티브를 CEO로 만들 방법을 찾아 봅시다. 스컬리씨는 원래 분야를 맡고, 스티브는 자기 분야에 집중하고요."
스티브가 이사회 의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최대주주이기도 했고 매킨토시부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스티브는 제 상관이기도 하고 부하이기도 했습니다. 이사진이 어떻게 하면 스티브가 승인할 CEO를 애플로 모셔올까만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장기적으로 성공할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더라면 우리가 결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 추측이지만요.
제가 보기에 스티브가 떠났을 때(1986년, 이사회에서 스컬리 대신 잡스를 CEO로 바꾸려는 잡스의 제안을 거절), 그 때조차도 저는 컴퓨터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일단 회사부터 고치자였는데, 어떻게 고쳐서 다시금 성공할 수 있을지 몰랐어요.
우리가 했던 일은 모두 스티브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의 방법론이야 알고 있었죠. 바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제품을 라이센스하지 않고 산업 디자인에 집중하였습니다. 실제로 회사 내부에 디자인 조직을 세워 두었죠.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파워북… 퀵타임을 개발했습니다. 이 모두가 스티브의 철학에서 만들어진 겁니다… 판매와 마케팅, 제품의 발전도 모두 스티브의 아이디어였죠.
디자인 아이디어는 분명히 모두 스티브의 것입니다. 제가 있을 때 만든 물건들도 실제로는 스티브 디자인이라 할 수 있어요.
정말 후회하고 있는 멍청한 실수가 두 건 있었습니다. 잘 결정했더라면 애플이 정말 달라졌을 겁니다. 하나는 모토로라 프로세서 수명이 끝나갈 때 찾아왔어요… 최고의 기술자 두 명을 보내서 팀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칩을 쓸지 알아볼 팀이었죠.
이들이 돌아와서는 어느 RISC 아키텍쳐를 택하건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최고의 사업선택이 될만한 칩을 골라보라 하였죠. 단, CISC는 안 된다였습니다. CISC는 복잡한 인스트럭션 셋이고, RISC는 줄인 인스트럭션 셋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텔이 우리를 붙잡기 위해 엄청나게 로비를 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IBM, 모토로라와 함께 PowerPC를 만들기로 하였죠. 지나고 보면 끔찍한 결정이었습니다. 인텔과 같이 했더라면 보다 더 범용화된 컴퍼넌트 플랫폼을 얻을 수 있었을 테고, 1990년대의 애플도 크게 달라졌겠죠. 1990년대의 프로세서는 충분히 강력해져서, 모든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돌릴만 해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 3.1을 내세울 때가 바로 그 때였습니다.
애플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모두 다 해왔는데요. 프로세서가 강력해지면 프로세서는 범용화되고 하드웨어가 다루어야 했던 부분을 소프트웨어가 서부루틴으로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버스를 놓친 셈이지요. 인텔은 110억 달러를 들여서 인텔 프로세서가 그래픽도 다룰 수 있도록 개선시켜나갈 것이었어요… 정말 끔찍한 기술 결정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기술적으로 저는 식견이 모자릅니다. 그래서 권하는대로 결정내렸죠.
다른 큰 실수는, 더 잘 생각해서 스티브에게 다시 돌아가야 하잖았나였습니다.
전 애플을 떠나고 싶었어요. 10년째 되자 더 이상 있기가 싫었습니다. 동부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사진에게 애플을 떠나고 싶으며 IBM이 나를 고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그랬더니 더 머무르라더군요. 그래서 머물렀더니 이사진에서 저를 해고했습니다. 정말 더 이상 머무르기가 싫었어요.
이사진은 애플을 매각해야 한다고 결정내렸어요. 그래서 1993년, 밖으로 나가서 애플을 팔아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AT&T와 IBM 등에게 매각의사를 타진해 보았죠. 그런데 아무도 사려하지 않았어요. 모토로라와 인텔이 잘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위험을 떠안기 싫다는 것이었죠. 제가 감각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면 안됩니까? 스티브에게 되돌아가서 다시금 회사를 운영해보라고 하면 안되나요?"
그것이 바로 올바른 결정이었을 겁니다. 너무나 확실해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죠. 제 책임입니다. 거의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고 있던 애플을 살렸을 텐데 말입니다.
사실 회사 내부의 분열때문에 이사진에서 저를 해고한 이유도 있기는 합니다. 애플의 방향때문이었죠. 애플을 보다 사무용 컴퓨터 회사로 만들고 싶어하던 부류가 있었어요. 이들은 아키텍쳐를 개방시키고 라이센스하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한편은(저도 여기에 속해 있었습니다) 사용자 경험과 같은 애플 방법론을 지키자였죠. 뉴튼같은 차세대 제품으로 이동하자이기도 했습니다.
새 방향이기는 했지만 뉴튼은 실패했어요. 너무나 근본적으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전 해고되었고, 기술을 라이센스시킨 CEO 두 명이 등장했지만… 그들은 산업 디자인을 날려버렸습니다. 다른 회사 컴퓨터처럼 보이는 컴퓨터들을 만들어내고 광고와 홍보에도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어요. 모든 것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들은 애플을 보다 엔지니어 타입의 회사로 만들었고 거의 부도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였죠.
스티브가 돌아오지 않았다면(즉,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면) 애플은 사라졌을 겁니다. 꽤 확신해요. 완전히 죽어버렸을 거에요.
그가 뭘 했죠? 그는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애플에 그가 되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제 임기동안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모두가 스티브의 철학, 디자인 방법론을 따른 것 뿐이었습니다.
불행히도 그만큼 우리는 잘 하지 못했어요. 타이밍이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보다 스티브가 애플에서 더 잘해냈죠. 스티브도 넥스트에서는 그다지 행운이 없었습니다. 타이밍이 아니었죠. 그가 정말 우리보다 훨씬 잘 한 게 있다면, 더 좋은 차세대 운영체제를 구축해 놓은 겁니다. 결국 애플 운영체제와 합쳐졌죠.

Q: 그가 당신의 프로젝트라 볼 수 있는 뉴튼을 죽였다고들 말하는데요. 복수때문에요. 정말 복수때문에 그랬다고 보십니까?
Sculley
: 아마도요. 말하지를 않을 테니 저도 모르죠.
뉴튼은 뛰어난 아이디어였습니다만 너무나 시대를 앞서갔어요. 사실 뉴튼은 애플을 부도에서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뉴튼을 어떻게 만들지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일단은 새로운 마이크로프로세서부터 만들어야 했죠. 그래서 올리베티(Olivetti, 이탈리아의 컴퓨터 회사)와 연합하였고, 영국 캐임브리지 대학에서 나와 Acorn 컴퓨터사를 창립했던 헤르만 하우저(Herman Hauser, 오스트리아 출신, 1985년에 올리베티가 Acorn을 인수)를 만났어요. 헤르만이 ARM 프로세서를 디자인하였고, 애플과 올리베티가 거기에 자금을 댔습니다. 애플과 올리베티의 지분이 47%였고, 헤르만이 나머지를 가졌죠. 뉴튼용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래픽이 많고 온갖 서브루틴을 처리해줄 소형화된 기기용 프로세서이기도 했죠… 애플의 재무상황이 급박해졌을 때 애플은 ARM 지분을 8억 달러에 팔았습니다. 그대로 갖고 있었더라면 이 회사가 80억에서 100억 달러 어치가 되었을 텐데요. 오늘날이면 더 커졌겠죠. 하지만 덕분에 애플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제품으로서 뉴튼은 실패하였습니다. 아마 1억 달러 정도는 날렸겠죠. 하지만 ARM 프로세서로 훨씬 많이 벌어들였습니다… 지금도 애플 아이포드와 아이폰과 같은 모든 제품 안에 들어가 있죠. ARM이 지금의 인텔입니다.
애플은 기술 회사가 아니라 디자인 기업이에요. 아이포드를 보십시오. 아이포드에 있는 기술만 보면 애플이 다른 이들로부터 사들인 것을 조합한 것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매킨토시를 만들었을 때조차도 제록스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가지고, 제록스의 핵심 인력들을 고용하여 만들었었죠.
애플의 실패작들을 보면 오히려 최첨단일 때 실패하였습니다. 리사는 맥 이전에 실패하였죠. 매킨토시 랩톱도 파워북 이전에 실패하였습니다. 제품 실패라고 말하기는 하는데, 그런 실패는 잘 일어납니다. 뉴튼의 실수라면 과장광고였죠. 뉴튼이 실제로 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를 뿌려댔습니다. 그러니 저명한 실패작이 되었죠.
Q: 잡스의 영웅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에드윈 랜드(Edwin Land, 폴라로이드의 창립자)라 말씀하시겠죠?
Sculley
: 예. 스티브와 제가 랜드 박사에게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랜드 박사는 폴라로이드를 나와서 케임브리지의 Charles River에 개인 연구소를 따로 차렸습니다. 화창한 오후였는데요. 커다란 회의실의 비어있는 탁자에 앉아 있었죠. 랜드 박사와 스티브는 둘 다 탁자 중앙을 쳐다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랜드 박사가 이렇게 말했어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어때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어요. 아직 한 대 만들기도 전에 내 앞에 놓여있는 양 리얼했거든요."
스티브는 이렇게 말했죠. "맞습니다. 제가 매킨토시를 만드는 것도 똑같습니다." 개인용 계산기만 써 본 사람에게 매킨토시가 어때야 하냐고 물어본다면 대답을 못했을 거라는 말도 했어요. 소비자 조사를 할 수 없잖습니까? 그러니 가서 만들어야 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했다는 것이죠. 그럼 이제 다들 어떻게 생각할까요?
둘 다 물건을 발명한 것이 아니에요. 발견한 것이지요. 그런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둘 모두 제품은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미처 발견을 못 한 것이죠. 발견한 자는 우리입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언제나 존재했었고 매킨토시도 마찬가지로 존재해 왔습니다. 스티브는 랜드를 대단히 존경했어요. 연구소 가는 길 내내 즐거워했었죠.
Q: 잡스가 얘기한 다른 영웅은 없나요?
Sculley
: 로스 페로와도 상당히 가까웠죠.
로스 페로는 애플과 매킨토시 공장을 꽤 자주 방문했습니다. 로스도 시스템으로 생각하는 인물이었죠. 그가 EDS (Electronic Data Systems)를 만들었었어요. 그야말로 모험자본가였죠. 그는 큰 개념을 신봉했어요.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이죠. 그도 인물이긴 인물입니다.
모리타 아키오도 분명 영웅 중 하나였죠. 모리타는 소니의 창립자이자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스티브는 제품이 전공이었고요.
Q: HP는 어땠나요? 잡스는 초창기 시절, 워즈와 잠시 일하면서 HP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요."
Sculley
: HP는 애플의 모델이 아니었습니다. 책상 위에 일하던 걸 놓고 갔을 때 빌 휴잇(Bill Hewi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어슬렁 들어와서 쳐다본다는 HP way는 있지만요. HP는 매우 개방적이고 엔지니어 지향적이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애플은 디자이너 회사에요. 엔지니어 회사가 아닙니다. HP가 훌륭한 디자인으로 알려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엔지니어링이 훌륭하다로 알려졌죠. HP는 애플의 모델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전혀요.
Q: 잡스도 돌아다니면서 관리하는 스타일 아닌가요?
Sculley
: 물론 그랬죠. 실리콘밸리에서는 다 그렇게들 합니다. HP가 실리콘밸리에 기여한 것이 그거죠. 모든 실리콘밸리 신생기업들이 다 그런 성격을 갖고 있어요. 그것만은 분명 HP의 유산입니다. HP는 돌아다니면서 하는 관리의 아버지격이었습니다. HP가 바로 엔지니어링 회사의 아버지 격이지요.
애플에서는 엔지니어들이 관리자들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엔지니어들보다 더 중요하죠. 소프트웨어를 보세요. 빌 엣킨슨(Bill Atkinson),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 스티브 캡스(Steve Capps)와 같은 최고의 인물들은 소프트웨어 디자이너라 불리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 불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거든요. 코드를 작동시킬 뿐만 아니라, 코드 자체가 아름다워야 해요. 사람들이 보고 경탄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작가와 같죠. 누군가의 스타일을 보는 것이니까요. 코드를 보고 작문 스타일을 보면서, 아름다운 천재성이 코드에, 혹은 하드웨어에 드러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Q: 스티브 잡스도 디자인을 배운 학생으로 유명합니다. 애플 주차장에 있는 모든 메르세데스를 다 쳐다볼 것 같네요.
Sculley
: 스티브는 서체와 색상, 레이아웃이 어떻게 출력되는지를 정말 미친사람처럼 탐구합니다. 스티브가 떠난 뒤였는데요. 일본 사업때문에 출장을 가야 했던 적이 있었어요. 당시 일본 애플은 400만 달러가 넘는 회사가 되었고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고소를 당한 상태였습니다. 적자였고 지사를 닫아야한다고들 말했죠. 간단히 말씀드리면, 4년 뒤, 우리는 20억 달러 어치의 사업으로 일본 사업을 키웠고 일본 내 2위의 컴퓨터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있죠. 일본인들이 제품을 원하는 방식 그대로 제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야 했거든요. 싱가포르에서 제품을 조립해가지고 일본에 팔았었는데, 상자를 열자마자 보이는 것이 설명서였어요. 그런데 그 설명서가 잘못 놓여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죄다 거절당하더군요. 미국에서는 설명서를 어떻게 놓건 간에 상관이 없잖아요. 무슨 차이가 있답니까?
일본에서는 큰 차이였어요. 그들의 표준이 우리랑 달랐습니다. 애플과 그 디테일에 대해 자세히 보세요. "open me first" 방식으로 상자를 디자인하고, 접히는 부분, 종이의 질, 출력의 질을 애플은 다 따집니다. 무슨 보석회사, 가령 불가리에서 뭘 사는 것과 같죠. 그런데 그 당시에 일본인들이 그랬어요.
Frog의 하트머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를 고르기 전에 디자인 회사를 고르기 위해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을 연구하곤 했습니다. 결국은 에슬링거를 불러서 "백설공주" 디자인을 만들어내죠.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무엇을 해 놓았는지, 어떻게 색상을 마감시키는지를 꼼꼼히 연구했습니다. 그 당시 실리콘밸리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일을 하지 않았어요. 8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보자면 우리가 최초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건대, 제 아이디어는 아니에요. 디자인에 대한 저의 흥미와 배경은 오로지 스티브 덕분에 생겨난 것입니다.
스티브가 떠나고 제가 애플을 맡았을 때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컴퓨터 회사에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CEO로 앉았다고 말이죠. 그런데 애플은 그저 컴퓨터 회사가 아니었어요. 그 점을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죠. 애플은 제품과 마케팅을 디자인하여 자리를 잡는 회사였습니다.
"수직통합된 광고 대행사"라고 부르기도 했었는데, 그런 표현은 부당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이라면 그런 표현보다 더 안 좋은 표현을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됐는지 알아요? 요새는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애플이 모델이 되었어요. 공급망만 다른 곳에서 관리할 뿐입니다.
John Sculley On Steve Jobs, The Full Interview Transcript | Cult of Mac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http://kmug.co.kr/board/zboard.php?id=column&no=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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